연구 – 아이디어, 스토리텔링, 비전, 행동력

HCI학회들을 돌아다니면서 만난 후배 mcpanic이 “아이디어”에 관해 쓴 포스팅을 방금 보고 이것 저것 생각할것이 많아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박사를 하는 대학원생에게 있어서 프로젝의 참신성, 페이퍼의 독창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프로젝이 섹시하고, 페이퍼가 재미있고 배울 것이 많을 때 흔히 하게 되는, 혹은 듣게 되는, 말은 “아이디어가 참 좋아” 혹은 “난 왜 이 아이디어를 못 생각했을까?” 등등이다. 컨퍼런스에 갔을 때 유명 리서쳐들끼리 점심, 혹은 저녁때 몰래 삼삼 오오 사라지는 이유는 “아이디어를 나누기 위해서”이고, 허구헌날 지도교수들이 대학원생 랩에 들어와서 하고 싶어하는 것은 “아이디어 브레인 스토밍”이다. 이렇듯, 미국에서 박사를 하면서 아주 자주 듣는 버즈 워드가 바로 이 “아이디어”이다.

그럼 이 아이디어란 어떤 것으로 구성이 되는가? 일단 발단은 “문제점”이다. 예를 들면, 이전 스마트 폰들은 확대/축소기능이 메뉴로만 가능했다. 그래서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함에 있어, 아주 필수 기능인 확대/축소기능이 사용하기에 어려웠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해결책이 가능하다. 확대/축소 기능 메뉴를 소프트웨어단에서 사용하기 쉽게 만들 수도 있고, 스마트 폰 외장 케이스에 별도의 버튼을 달아 사용하기 쉽게 만들 수도 있다. 애플은 멀티터치 제스쳐로 이 문제를 해결했고, 곧 나올 내 카이 페이퍼에서는 accelerometer의 tilt parameter를 사용해서 확대/축소 기능을 가능케 한다. 이 모든 것이 “솔루션”이고, 어떤 솔루션이 다른 솔루션에 비해 특별히 좋다고 할 수도 없고,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문제점에 대한 나름의 고찰과 그에 대한 솔루션이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mcpanic이 말한 것처럼 개개의 아이디어는 상대적이다. 개인의 취향과 배경에 따라서 어떤 아이디어가 독창적일 수도 있는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시간낭비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박사를 하면서 아이디어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두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1. 스토리텔링:

“좋은 아이디어라고 후일 평가되는 아이디어가 반드시 현재 모두에게 공감할 수 있는 문제로부터 출발하지는 않는다.” 이 무슨 얘기? 해결책과 문제점은 닭과 달걀의 관계와 매우 비슷하다. 문제점이 있기에 해결책이 있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솔루션이 안개에 가려있던 문제점을 발굴해내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기존 리모콘 혹은 게임 조작방법이 불편해서 닌텐도 위못이 생겨난게 아니라, 위못 컨트롤을 만들고 나서 보니까,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누를 수만 있는게 아니고, 팔을 휘저을 수도 있었는데 입력장치에서 반영을 못하고 있는 문제점이 있었다”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것이다. 사실 이전 스마트폰 사용자들은 아무런 불편함 없이 확대/축소 소프트웨어 버튼을 사용하고 있었다. 애플의 멀티 터치 제스쳐를 사용하고 보니, 이전 확대/축소 기능에 요구되는 불필요한 메뉴 선택 과정이 문제점이었다는 것이다.

어디서 출발을 하든, 문제점이든, 해결책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스토리텔링” 하는 기술이다. 미국에서 석박사를 하는 이유가 이 “스토리텔링”하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생각해낸 알고리즘 혹은 디자인이,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그네들의 어떤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하고, 그 해결방법이 다른 해결방법보다 왜 중요한지 동앗줄을 엮듯이 주울주울 잘 엮어 설명하는 기술… 이것이 “스토리텔링”이다. 그리고 mcpanic이 말한 바처럼 흐름과 소통을 통해 가다듬어 살찌워야하는 기술이 이 “스토리텔링” 기술이다.  자기 연구분야의 유명한 사람이 내 아이디어의 가치를 하나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했다는 것은 내 아이디어가 반드시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언어와 사고과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여 필요한 내용은 이야기 안하고, 필요하지 않은 내용만 힘을 잔뜩 들여서 설명했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박사 2년차때 지도교수에게 이야기해보았던 아이디어를 6년차때 무심코 찾은 적이 있다. 지도교수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이전에 무참히 짙밟혔던 그 아이디어에 대해 다시 설명을 할 기회가 있었다. 나의 예상과는 달리, 지도교수는 180도의 반응을 보였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지도교수의 사고과정과 언어를 드디어 마스터했구나!”

2. 비전, 행동력:

마소에서 인턴을 하면서 배운 구절이 있다. “Ideas are cheap. Execution is difficult”. 마소리서치에는 두명 이상이 모일만한 장소마다 화이트 보드가 있는데, 지나치다 보면 매일같이 새로운 다이어그램 혹은 공식이 적혀있었다. 인턴쉽을 하면서, 동료 인턴들과, 혹은 리서쳐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매일 페이퍼가 나올 정도의 굵직굵직한 프로젝에 대해 토론을 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하루에 주어진 시간이 48시간이 아니라 24시간뿐임을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쉽고, 실체를 불어넣는 과정이 사실 더 힘들다는 것. 어떤 아이디어에 실체를 불어넣을 모든 스킬 (프로그래밍, 툴, 접근방법)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  페이스북을 처음에 만들었던 윙골바트 형제는 페이스북을 가능케 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저커버그는 필요한 리소스, 그리고 기술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Execution이 중요하다.

프로씨딩을 2~3년치 정도 완독하고, 리서쳐들과 혹은 교수들과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할 깜냥이 되기 시작하면 논문이 나올 법한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리고 랩에서 하루에 20시간씩 죽치고 있다보면 스킬을 쌓여간다. 이때부터 중요한 것은 나의 비전이다.  mcpanic의 “아이디어를 대한 스스로의 확고한 믿음”이 나의 비전에 대한 생각을 풀어놓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만들고 싶은 미래에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라는 확신”이 있으면, 관련 프로젝을 여럿 하게 되고, 졸업할 때가 되었을 때,  아주 탄탄한 졸업 논문을 쓸 수가 있다. 그때그때 인기가 있어보이는 것을 marginal한 incrememntation으로 이것 조금 저것 조금씩 하게 되면, (e.g., 인포비즈 프로젝도 조금, 디자인 프로젝 조금, 인터렉션 프로젝 조금, ethnography 뭐 이런식으로) 당장에 페이퍼는 많아질지 모르지만, 이렇듯 일회용성 프로젝은 고급 컨퍼런스에 내기가 쉽지가 않을 뿐더러, 졸업이 어려워진다.

길어졌다.. 오늘은 여기까지..

-몽키생각-


One Comment on “연구 – 아이디어, 스토리텔링, 비전, 행동력”

  1. mcpanic says:

    글 너무 잘 읽었어요 누나. 제가 고민하고 있던 부분들에 대해 보다 폭넓은 경험과 노하우가 담긴 누나의 정리가 큰 도움이 되네요. 제가 요즘 아이디어를 가지고 어떻게 제대로 된 연구 주제로 키워나가야 할지 생각이 많거든요. 제가 막연히 느끼고 있던 것들이 생각해 보니 스토리텔링과 비전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던 것들이네요.

    스토리텔링에 대해서 저도 많이 느끼고 있는데, 특히 HCI 커뮤니티가, 또 미국의 연구자들이 표현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익혀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같은 아이디어라도 어떤 컨텍스트에 담는가, 또 어디에 포인트를 두는가, 또 어떻게 frame 하는가에 따라 천차만별의 반응이 나타나니까요.

    종종 이렇게 좋은 글 써주세요🙂 블로그 있으신 거 첨 알았네요, 자주 놀러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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